작가
윤 지 훈 (Yun Ji-Hun)
저는 세계를 하나의 완결된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존재는 언제나 설명에서 미끄러지고, 의미는 고정되는 순간
오히려 사라진다고 느껴왔습니다.
그래서 제 작업은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설명되지 않은 상태 그 자체를 드러내는 데서 출발합니다.
저에게 예술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의미가 태어나기 직전의 불안정한 순간을 기록하는 행위입니다.
제 예술 세계의 중심에는 흐름이 있습니다. 감정, 생각, 기억, 관계는
모두 고정되지 않은 채 끊임없이 변화하며,
저는 그 흐름이 잠시 형태를 갖는 지점을 포착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규칙과 구조를 뜻하는 Formula와,
우연성과 불확정성을 뜻하는 Unformula라는 두 개의 영역을 설정해 왔습니다.
제 작업은 이 둘이 충돌하고 겹쳐지는 틈,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창발의 순간을 탐구합니다.
의미는 계획된 설계에서 완성되지 않고,
규칙 안으로 들어온 우연에 의해 비로소 드러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완성을 목표로 작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완성될 수 없음,
고정될 수 없음 자체를 하나의 존재 방식으로 받아들입니다.
형태는 결론이 아니라 기록이며, 멈춤은 종결이 아니라 흐름을 담아두는 행위입니다.
유체조형 작업에서 제가 다루는 물질 역시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조건 속에서 스스로 형태를 선택하는 존재에 가깝습니다.
저는 그것을 조형한다기보다, 발생을 허용하고 지켜보는 쪽에 가깝습니다.
Written on Skin은 이러한 세계관이 가장 직접적으로 구현된 작업입니다.
언어는 언제나 오류를 포함하고, 감정은 말보다 먼저 흔들립니다.
저는 그 불완전한 언어를 감정 분석과 알고리즘이라는 규칙에 통과시켜,
다시 예측할 수 없는 유체의 형태로 되돌립니다. 이 과정에서 생성된 형태는 하나의 답이 아니라,
누군가의 내면이 잠시 세상에 닿은 흔적입니다. 관람자는 그것을 눈이 아니라 피부로 경험하며,
의미는 해석이 아닌 감각으로 전달됩니다.
Meaning in a Cup 역시 같은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개인의 이야기가 시각과 미각으로 번역될 때,
의미는 더 이상 설명되지 않고 체험됩니다. 저는 이렇게 감정이 서로 다른 감각의 언어로 이동하는 과정을 통해,
예술이 특정 매체에 고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저는 예술과 화장품, 기술과 감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피부는 가장 사적인 영역이면서 동시에 세계와 맞닿아 있는 경계이기 때문입니다.
그 위에 남겨지는 촉감과 온도, 잔향은 누구에게나 다르게 읽히지만, 분명히 존재합니다.
저에게 예술은 특별한 장소에 놓인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의 감각을 나누는 방식입니다.
제 작업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만 완성됩니다. 나라는 존재는 홀로 설명될 수 없고,
타자와의 만남 속에서만 드러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흐름을 멈추려 하지 않고,
다만 그것을 담아두려 합니다. 그 안에서 태어나는 불완전한 형태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또 다른 의미로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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