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캐니언
Grand Canyon (2019)
•
Oil on canvas
•
72 x 72 x 3cm
•
박성진 SJ Park
작품 소개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익숙한 풍경으로서의 그랜드 캐니언이 아니라, 색과 두께로 번역된 거대한 지층의 호흡이다. 화면 아래에서부터 밀려 올라오는 붉은 바위들은 오렌지, 마젠타, 선홍색이 뒤엉킨 거친 덩어리로 남아 있고, 그 사이사이의 짙은 블랙과 딥 그린은 깊이를 알 수 없는 협곡의 틈처럼 가라앉아 있다. 위로 시선을 올리면 노랑과 옅은 브라운, 미묘한 바이올렛이 섞인 고원의 평면이 수평으로 길게 펼쳐지고, 가장 위쪽에서는 선명한 블루의 하늘이 가느다란 띠처럼 좁게 열려 있다. 실제 풍경의 원근 구조를 따르면서도, 색의 온도 차와 질감의 대비가 훨씬 과장되어 있어, 눈앞의 장면이라기보다 ‘기억 속에서 다시 달궈진’ 그랜드 캐니언에 가까운 인상을 만든다.
오일 물감을 여러 번 두껍게 쌓아 올린 표면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바위의 형태보다 손의 움직임과 시간의 층위를 먼저 드러낸다. 붉은 바위 위로는 짧게 끊긴 스트로크와 칼자국이 뒤섞여 울퉁불퉁한 표피를 만들고, 그 사이로 옐로와 라임 그린, 짙은 바이올렛이 미세하게 스며 나와 한 번에 정리된 색이 아니라 수차례의 망설임과 수정이 겹쳐진 결과임을 알게 한다. 아래쪽의 어두운 영역에서는 블랙과 인디고, 청록이 섞여 거의 추상적인 소용돌이를 이루고, 그 위로 밝은 터쿼이즈와 화이트가 얇게 얹혀, 빛이 바위 표면을 스치고 사라지는 찰나의 잔상을 남긴다. 화면 한가운데쯤, 노란빛이 강하게 응축된 부분은 마치 태양이 바닥에 떨어져 다시 반사되는 듯한 인상을 주며, 이 풍경 전체가 강렬한 열과 눈부심 속에서 서서히 흔들리고 있다는 감각을 만든다.
한 걸음 물러서면 개별적인 붓질과 요철은 더 이상 분리되지 않고, 아래의 뜨거운 붉은 지층과 위로 멀어지는 황금빛 고원, 그 너머의 차가운 하늘이 하나의 거대한 파노라마로 합쳐진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붉은 바위의 가장자리에서 어둠의 골짜기로, 다시 밝게 타오르는 중심부와 먼 수평선으로 이동하며, 실재하는 장소보다 그곳에 서 있었을 때의 몸의 감각과 숨의 리듬을 떠올리게 된다. 이 풍경 앞에 서 있는 동안 관람자는 절벽과 하늘을 구분해 읽기보다, 압도적인 색의 온도 차와 깊이의 진동 속에 잠시 몸을 맡기게 되고, 거대한 자연을 바라본 기억과 지금의 감정이 겹쳐지는 그 틈에서, 자신만의 그랜드 캐니언을 조용히 떠올려 보게 된다.
그랜드 캐니언은 박성진(SJPark) 작가의 초기 유화 작품이다.
작가가 구축한 세계는 풍경을 바라보는 관습적 시선을 넘어, ‘존재를 바라보는 사유의 장소’로 이동한다. 이 작품에서 대지는 단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기억이 퇴적된 의식의 지층이며, 하늘은 그 기억이 빛과 의미로 확장되는 사유의 공간이다.
작가는 실제 그랜드 캐니언을 직접적으로 재현하기 보다, 그 풍경 속에서 느낀 시간의 무게, 존재의 심장, 그리고 빛의 탄생을 회화적 언어로 번역해 화면 위에 새겨 넣는다.
지평선은 현실과 초월의 경계이며, 그 경계를 넘나드는 독수리는 관람자의 시선이자 인간의 사유를 상징한다. 독수리는 공간을 횡단하는 존재이자, 창조자의 시선, 혹은 관조하는 자의 영혼이다.
이 작품은 풍경과 추상을 넘나드는 경계에 서 있으며, 단순히 자연을 묘사하는 회화라기 보다, 자연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 철학적 풍경 회화라고 볼 수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터너(J.W.M.Turner)의 빛에 대한 해체적 접근, 바넷 뉴먼(Barnett Newman)의 수직적 공간 인식,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사유적 색면 구성과 일맥상통하는 정신성이 느껴지지만, 작가는 이를 모방하지 않고 자신만의 언어로 재창조한다. 특히, ‘대지-기억-존재-빛’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기반으로 풍경을 해석한 사고 과정은, 그 자체가 하나의 현대적 회화 언어로 확장된다.
‘그랜드 캐니언: Land and Sky’는 시각적 감상의 대상일 뿐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질문하도록 만든다. ‘풍경을 그린다’는 개념을 뛰어 넘어, ‘풍경을 통해 존재를 말한다’는 새로운 회화적 서사를 제안한다.
“대지는 기억을 품고 있었고, 하늘은 그 기억을 빛으로 확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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