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니티_220101
Eternity_220101 (2022)
•
Oil on canvas
•
92 x 117 x 3cm
•
박성진 SJ Park
작품 소개
캔버스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하나의 형상이 아니라, 셀 수 없이 잘게 쪼개진 선들의 떨림이다. 옅은 그레이와 화이트가 만든 바탕 위로, 레드와 브라운, 블루와 옐로 계열의 짧은 선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듯 반복되며, 화면 전체에 촘촘한 결을 만든다. 각 선은 방향도 길이도 조금씩 다르지만,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지는 리듬 덕분에 무질서보다는 낮고 긴 호흡의 파동에 가깝게 느껴진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엷은 안개처럼, 가까이 다가가면 수없이 겹쳐진 흔적들의 군집으로 보이는 이 패턴은, 구체적인 장면 대신 끝없이 이어지는 시간의 표면을 떠올리게 한다.
오일 물감을 여러 번 덧입힌 표면에는 미세한 요철과 색의 잔향이 남아 있다. 짧게 끊어지고 비틀린 선들이 서로를 가로지르며 만든 층 사이로, 이전에 올려 두었던 색들이 틈틈이 드러나, 한 번의 제스처가 아니라 수많은 반복과 수정의 과정이 응축된 장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화면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선이 먼저였는지, 어디까지가 하나의 움직임이었는지 구분하기 어려워지고, 각각의 자국은 하나의 순간이 아니라, 오래 이어지는 감정과 생각의 미세한 진동처럼 남는다.
한 걸음 물러서면 개별적인 선들은 더 이상 분리되지 않고, 조용히 맥동하는 하나의 장면으로 합쳐진다. 시선은 화면 어디에 머물러도 곧 다른 선들의 흐름으로 밀려가며, 시작도 끝도 뚜렷이 찾기 어려운 순환 속에 머무르게 된다. 이 끝나지 않는 패턴을 바라보는 동안 관람자는 특정한 이미지를 찾기보다, 자신 안에서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기억과 감정의 리듬을 자연스럽게 겹쳐 보게 되고, 아주 작은 떨림들이 모여 하나의 ‘영원’한 분위기를 이루는 순간과 조용히 마주하게 된다.
이터니티 시리즈 (Eternity Series)는 박 성진 작가(SJPark)가 2021년부터 현재까지 전개해 오고 있는 일련의 회화 작업이다. 화면 전체가 작은 붓 터치와 색채로 가득 차 있는 추상 회화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전체가 하나의 패턴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수많은 곡선, 짧은 직선, 겹쳐진 색의 흔적 등이 층층이 쌓여 있다. 각각의 붓질이 독립적으로 살아 있어, 마치 혼돈 속에 규칙이 숨어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화풍은 추상 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를 연상시키며,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의 드리핑(Dripping) 기법과도 닮아 있다. 하지만, 이터니티 시리즈는 드리핑 기법의 우연적/즉흥적인 선이나 점들과는 달리, 작가가 하나하나 의도적으로 칠한 붓터치로 이루어져 있다.
색감은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 보라색 등이 고르게 섞여 있어, 다채롭고 활기찬 분위기를 만든다. 전체적으로는 따뜻한 색조와 차가운 색조가 교차하며 균형을 이룬다. 특정한 중심이나 방향성이 없고, 화면 전면이 균등하게 채워져 있는 ‘올오버 페인팅(All-over Painting)’ 형식이다.
보는 위치에 따라 시선이 특정 부분에 머물기도 하지만, 곧 전체로 퍼져 나가는 감각을 준다. 반복된 붓 터치와 색의 진동이 리듬감과 생동감을 만들어내며, 보는 이로 하여금 질서와 무질서 사이를 오가는 감각을 경험하게 한다.
점화點畵 시리즈로 유명한 김환기(1913~1974)의 올오버 감각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 하지만, 김환기의 명상적/서정적 분위기에 비해 이터니티 시리즈는 훨씬 다채롭고 혼돈스러운 에너지를 보여준다. 반복되는 붓질과 화면 전체의 일정한 리듬은 박서보(1931~2023)의 묘법 시리즈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박서보의 단색화는 절제된 색과 미니멀리즘을 강조하는데 비해, 이터니티 시리즈는 색채가 폭발적으로 다양해 혼돈과 생동을 추구한다.
정리하면, 이터니티 시리즈는 서양 추상 표현주의의 혼돈적 에너지와 한국 단색화의 명상적 반복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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