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스스로를 한 문장으로 소개한다면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가요?
강안나는 음식과 전통 회화의 상징을 통해 흘러가는 시간의 관성을 잠시 멈추고, 그 안에서 삶, 자연, 관계의 감각을 다시 인식하게 하는 작업을 이어가는 작가입니다.
Q.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나 출발점이 된 순간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대학원에서 예술이론을 공부하며 오랫동안 기획과 창작을 병행해 왔지만, 결혼과 출산, 이민으로 인해 작업에서 잠시 멀어지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공백의 시기에 우연히 민화를 접하게 되었고, 일상과 삶의 리듬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민화의 언어가 다시 작업을 시작하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민화는 중단되었던 시간과 현재의 삶을 부드럽게 연결해 주는 통로였고, 그 만남이 지금의 작업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Q. 지금의 작업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경험이나 사건은 무엇이었나요?
지금의 작업 세계관은 어떤 하나의 사건에서 비롯되기보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일상의 시간, 관계의 변화, 계절을 통과하며 느낀 감각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작업의 방향이 만들어 졌습니다. 삶과 작업이 분리되지 않은 채 함께 흘러오며, 지금의 시선과 주제에 이르게 되었다고 느낍니다.
Q.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지키려는 태도나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작업에 앞서 충분한 리서치와 사유의 시간을 거쳐 주제와 형식을 면밀히 설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개념과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맞물릴 수 있도록 구조를 다진 뒤 작업에 들어가며, 표현의 밀도와 완성도를 끝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세부적인 조율을 반복합니다. 이렇게 축적된 과정 자체가 작품의 깊이를 만든다고 믿습니다.
Q. 작업을 통해 반복해서 다루게 되는 주제나 질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작업을 통해 반복해서 다루게 되는 주제는 시간의 관성 속에서 문득 마주하는 ‘알아차림’의 순간입니다. 계절이 순환하고 세월이 흐르는 일상의 흐름 속에서, 감각이 깨어나는 찰나들이 삶의 속도와 방향을 다시 가다듬는 중요한 지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러한 작은 각성이 어떻게 기억으로 남고, 변화로 이행되는지를 음식이라는 가장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 시각화해 왔습니다. 음식은 주요 절기와 일생의 의례 속에서 시간을 구획하고, 자연의 순환과 삶의 단계를 인식하게 하는 표식이자 기억을 환기하는 강력한 통로로 작용합니다.
아울러 작업을 이어오며 전통과 현대가 어떻게 접속할 수 있는가, 그리고 전통 회화가 오늘의 감각 속에서 어떻게 대중과 다시 만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민화와 전통 회화의 형식과 상징을 현재의 삶과 경험에 맞게 재해석 함으로써, 전통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동시대의 언어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전통의 깊이를 존중하면서도 보다 많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공감하고 다가설 수 있는 방식을 찾는 것이 제 작업의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입니다.
Q. 본인의 작업은 어떤 사람에게, 어떤 순간에 닿기를 바라고 있나요?
저는 인생의 여러 국면과 그 속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희로애락으로 이루어진 삶의 장면들을 무겁지 않은 위트와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내고, 민화가 지닌 길상적 의미를 더해 축복과 희망의 메시지로 확장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감상자가 작품에 부담 없이 다가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이입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나의 작업이 바쁜 매일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방향은 저마다 다르지만 결국 서로 닮아있다는 동질감과 연대 의식을 건네며, 현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과 미래를 향한 조용한 희망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Q. 작업을 하지 않을 때의 일상은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작업을 하지 않을 때의 일상은 제 작업의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특별한 사건보다는 매일 반복되는 생활의 리듬, 계절의 변화, 식사와 휴식처럼 사소한 경험들이 작업의 출발점이 됩니다. 이러한 일상속에서 몸으로 먼저 감각하고 축적한 기억들이 작업으로 옮겨질 때, 화면 안의 음식과 풍경, 인간 관계의 장면들에게 자연스러운 온도와 밀도를 부여한다고 느낍니다. 작업실 밖에서의 시간은 곧 다음 작업을 준비하는 사유의 시간이자 삶과 작업을 다시 연결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Q.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작업의 가장 솔직한 장점과 약점은 무엇이라고 느끼나요?
제 작업의 장점은 보편적인 감정과 생각을 출발점으로 동시대의 감각을 반영해, 보는 이가 자연스럽게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민화를 뿌리로 하여 인간이 깊이 품고 있는 욕망과 바람을 진솔하게 드러내며, 형식보다 마음이 먼저 닿는 정직한 진정성을 지향합니다.
한편 작업이 특정 스타일에 안주하지 않도록 경계하며, 기계적인 방식이나 틀에 갇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있습니다.
Q. 작업 과정에서 불안하거나 흔들리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 편인가요?
작업 과정에서 불안하거나 흔들리는 순간이 찾아올 때, 감정을 다독이기보다 이성적인 방식으로 상황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관련 자료를 폭넓게 수집하고 충분한 리서치를 통해 기준점을 다시 세우며, 논리적인 설계와 리스트업, 다양한 선택지들을 글로 정리해 나가면서 흐트러진 생각을 구조화 합니다. 그렇게 사고를 정돈하는 과정 속에서 다시 창작의 리듬을 회복하는 편입니다
Q. 관객이 자신의 작업을 볼 때, 꼭 느끼지 않아도 되지만 느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감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특정한 감정을 관객에게 요구하고 싶지는 않지만, 각자의 경험과 서사를 작품 안에 자연스럽게 이입해 보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개인의 기억과 감정이 작품과 겹쳐질 때, 작품이 조금 더 가깝고 사적인 공간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작품을 ‘완성’했다고 느끼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작품의 내용과 형식은 사전에 충분한 자료 조사와 치밀한 설계를 통해 전반적인 방향을 명확히 설정해 두는 편입니다. 그 기반 위에서 구도를 잡고 밑그림을 완성한 뒤 본격적인 채색 단계에 들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동양화 재료인 분채(광물성 가루 안료)와 물감을 적절히 배합해 알맞은 농도를 찾아가고, 그렇게 만들어진 안료를 순지 위에 여러 겹 쌓아 올리며 화면을 구축해 나갑니다. 동시에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디테일한 묘사가 충분이 깊이를 지니는지, 화면 전체의 색감과 균형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지를 세심하게 살핍니다. 전체 구성이 더 이상 보완을 요구하지 않고 화면이 조화롭게 안정되었다고 느껴지는 지점에서 작품이 완성되었다고 판단합니다.
Q. 앞으로의 작업에서 더 탐구해보고 싶은 방향이나 질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현재 진행하고 있는 주제에 대해 좀 더 심화하고 확장하는 작업은 꾸준히 이어질 예정입니다. 동시에 고전 회화를 모사하는 전통 회화 연습을 병행하며, 선대 작가들의 정신성과 조형 언어, 회화적 기술을 몸으로 익히는 과정도 지속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기업이나 타 장르와의 협업, 참여형, 체험형 프로그램 등을 통해 작품이 일상과 만나는 접점을 넓히고 보다 많은 관객과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방식도 탐구해 보고 싶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전통과 현대, 개인의 감각과 공동의 경험이 교차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계속 질문해 나가고자 합니다.
Q. 작품을 소장하는 콜렉터와, 단순한 소유를 넘어 어떤 관계가 형성되기를 바라시나요?
작품을 소장하는 일은 단순한 구매나 투자 판단에 머무르기보다, 작가와의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작품의 외형적 정보나 시장가치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개인적인 이야기와 작업의 맥락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작품은 훨씬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만남을 통해 콜렉터와 작가가 소비자와 공급자를 넘어, 창작을 지지하고 함께 이야기를 이어가는 페이트론(Patron)적 관계로 발전하길 기대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이야기.
저는 음식과 전통 회화의 상징을 매개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잠시 멈추어 삶을 돌아보는 순간을 그려오고 있습니다. 계절의 변화, 통과의례, 일상 속의 밥과 다과처럼 익숙한 장면들은 저의 작업에서 삶의 좌표를 가늠하게 하는 표식입니다. 저는 무겁지 않은 위트와 따뜻한 시선을 통해 희노애락이 공존하는 인생의 면면을 담아내며, 민화가 지닌 길상적 의미를 오늘의 감각으로 확장하고자 합니다. 또한 저의 작업은 특별한 해석을 요구하기 보다, 보는 이가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포개어 읽도록 열려있습니다. 저는 작품을 통해 관람자가 잠시 숨을 고르고, 현재의 자리에서 다시 삶을 정돈해 나갈 수 있는 작은 여백을 건낼수 있기를 바랍니다.

.png&blockId=2d6ed215-1748-8086-a13a-e0b3226c45d1)